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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남기고 싶은 책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by 맑은청이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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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2020년 9월 16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요일 날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반물리학2' 를 재수강하고 있었다. 그 수업을 아침에 들으면서(사실 거의 듣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말하는 '현타'가 왔었다. 난 생각했다. 내가 오늘 피곤함을 느낀 건 어제 늦게 잠에 들어서 때문일까, 아님 듣기 싫은 과목을 들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과제가 많아서 일까, 밖에 비가 와서 일까, 여러 가지 사항들을 조합해본 결과 몇 개월 동안 쉼없이 달렸던 스스로가 지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 물론 몸이 쉬었던 날은 분명히 있었지만 '마음의 쉼'은 없었다. 노는 날에도 다음 커리큘럼에 대해 생각하고 늘 조급함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았지만서도 난 오늘의 공부를 포기할 순 없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한다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그래야 똑똑해지고 그래야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아는 오빠의 킥보드를 빌려서 도서관에 다녀왔다. C언어 프로그래밍 책을 빌려야했기 때문이다. 그 때 대한장학재단에서 진행하는 멘토링의 이성식 멘토님이 추천해주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이 떠올랐다.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태 읽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제목이 좀 유치하다고 느껴졌고(모리가 어린 아이 이름일 줄 알았다.) 인문학 책을 읽을 만큼 내 삶에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멘토님이 추천해주신 다른 책인 '타이탄의 도구' 라는 책을 읽을려고 했으나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그래, 인문학도 읽어줘야 사람이 소양이 생기지' 라는 생각이었다. 내게 책은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 나에게 고상한 취미가 되어주고 주변 사람들이 멋있어해주면서 나도 괜히 잘난 척 할 수 있으니깐. 무슨 일이었을까. 가끔 빌린 기술 책도 구석에 쳐박혀 두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너무 지쳐서 그런지 공부를 잠시 멈추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16년 동안 찾아뵙지 않았던 '루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교수와의 마지막 수업을 기록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책은 한 문장 한 문장이 가볍지 않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죽음, 돈, 가족, 결혼,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죽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이 때까지 어떻게 살아서 얼마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느새 나는 그와 그의 제자의 '인생의 의미'에 대한 토론과 그들의 삶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눈물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책을 읽는 내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했고 마음이 벅찼다. 마지막 모리 교수님이 돌아가실 때 나는 목이 메였지만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꾸욱 참았다.

 

 

 나는 내 분야 사람들이 참 딱딱하다고 느낀다. 컴퓨터와 일해서 그런가. 유쾌한 느낌도 있지만(젊은 세대가 많으니깐) 사람들은 똑똑한 컴퓨터를 조종하기 위해 밤을 새면서 건강을 악화시키고 그래도 현 시대에 다른 업종보다 취업을 잘 되기 때문에 걱정은 별로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시에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오니 항상 동향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 해야 하는 미래에 자신 없어 하기도 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맨날 아침 컴퓨터 관련 뉴스를 보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공부나 과제를 하는 일이 다반사고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이번에 나온 기술이 어쩌니, 어느 회사의 코딩 테스트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감성 있는 문과생' 으로 통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몇 개월 사이 나도 점점 딱딱해지기 시작했던 거 같다. 불필요한 말은 삼가하고 웃음을 잃었다. 이게 엄마가 늘 말했던 '사회화'인가 싶기도 했다. 내년 BOB 에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지만 BOB 자소서에 필요한 '큰 꿈' 은 정하지 못했다. 다들 이 프로그램이 과정이라는 걸 생각해라는데 나는 그저 참여하면 '도움이 될거야!' 라는 생각 뿐이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이게 요즘 나의 상황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리 교수님이 죽어가는 걸 난 3시간 동안 관찰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자체가 자극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 자체는 잔잔했고 덤덤하기까지 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쫓으며 사는지, 우리는 왜 타인에 신경쓰는지, 왜 과거에 얽매이는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모리 교수님이 말한 것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지만 그에 가까운 형태였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감동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관련 책을 읽으면서, 뉴스를 보면서 최고의 반응은 '재밌다', '흥미롭네' 이다.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울렁이고 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메모를 병행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소장하고 해가 지날 때마다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필요로 인해 독서를 찾는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해야한다.'

 이는 얼마나 근본에 가까운 말일까. 그저 고통없이, 추하지 않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삶에서 성공한다는 거는 또 다른 이야기다. 현 문화는 우리에게 위험을 가하고 우리는 그 위험에 의해서 옳지 못한 것을 따르게 된다. 그건 '돈'이고 나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내게 있어 모리 교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모순적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인데 돈이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떨어져 공부에 집중한다. 언제라도 내 곁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떠나보내고 있다. 이건 무엇 때문일까. 사랑하는 친구들과도 사랑하는 이와도 보낼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난 후에 나는 이를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모리 교수님의 삶과 여생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셨다. 

 

 

 내 인생에서의 스승을 생각했다. 영향을 주신 분은 많지만 모리 교수 같은 분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은 계시다. 바로 4개월 간 교양 수업을 해주셨던 '정대성' 교수님이시다. 물론 사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작년에 수업 후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분이 떠올랐다. 전공 수업만 가득했던 이유였을까, 교양도 점수를 잘 따기 위해 어둥바둥 해서 그랬을까, 졸업 후 기억할만한 수업이 몇 개 없을 거 같은데 그 중에 단연은 정대성 교수님의 '고전 읽기와 토론'이었다. 나를 변화시켰고 성장케했다. 그 성장은 비단 숫자인 '학점'과는 거리가 먼 내적인 성장이었고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남을게 분명하다. 그 분께 다시 연락이 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에 대해 돌이켜 봤고 가족에 대해 생각했으며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또한 올바른 가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답을 내야하는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답들을 살아가면서 찾기로 했다. 혹여 못 찾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을거다.

 

 

 우리는 왜 하루를 10분이라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안달이 나있을까? 10년 전만 해도 '3당4락(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 라는 말이라든지 '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를 잘한다'라든지 노력과 열정, 부지런함이 덕목이었다. 베스트셀러도 다 그런 느낌이다. 나는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을 보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낙관'에 관련된 책들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있는거에 만족하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한다며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힘든 부분을 공감해주고 이를 치유해주는 책들이 많이 팔린다. 이를 보면 현 세대에 힘듦이 느껴지고 이런 책을 통해 얻는 마인드가 사회에서 통허자 않을 텐데라는 무력함도 든다. 나 또한 모리 교수님의 말을 실천하며 주변을 사랑하는데 열정을 쏟으며 살아가고 싶지만 하루하루가 경쟁인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직은 이런 책을 읽을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싶다. 오늘은 며칠 동안 피곤하다고 미뤘던 엄마와의 통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을 지켜줄, 또한 내가 끝을 지켜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물어야겠다. 

 

 

 오늘 나에게 삶의 의미를 재단하게 해주신 코치, 모리 교수님, 이를 저에게 전해준 미처씨,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20년 9월 16일 오후 5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으며

삶에 잠시 지쳤던 내가

 

인생은 레슬링 경기와도 비슷하고 이기는 건 언제나 사랑이다. 

 

 

 우리 문화는 우리 인간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네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을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난 나이 든다는 사실을 껴안는다네.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성장이야.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덕분에 더욱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네.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 

 

살아가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지를 발견해야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하지만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게 .그러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으로 괴로워지지도 않고 말이야.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풀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될거야.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냐. 바다의 일부라고
<파도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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