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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다리를 다쳤을 때

by 맑은청이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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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쯤이었다. 여중 여고 출신인 나는 반에 한 두 명 쯤 있는 운동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고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독 튀는 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잘 안 되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점심시간에는 물론 이거니와 해가 지기 전까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였으니깐.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때 아닌 시련이 찾아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수업을 하는 건물과 급식실 및 강당이 있는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참 농구에 빠져있던 나는 급식을 먹고 빠르게 강당으로 올라갔다. 강당에는 농구대가 4개 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농구를 하려던 찰나 나는 내가 슬리퍼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에 슬리퍼라니 역시 안될 말이지만 점심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그날만 슬리퍼를 신고 농구를 했다. 같이 운동해주는(약간 장난 식으로) 친구 두 명과 슛을 하고 놀고 있었다. 레이업을 시도하고 착지할 때 그 일이 발생했다. 슬리퍼가 미끄러지면서 발목이 꺾여서 내려온 것이다. 당시에도 몸무게가 꽤 나가던 나였기 때문에 상황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발목이 땅에 닿자마자 거의 90도 가량 꺾이면서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꼈다. 옆에 친구는 넘어지는 내 모습을 보고 큰 웃음을 터뜨렸지만(원래 나뭇잎만 보아도 웃음이 터지는 나이니깐) 한참을 있어도 못 일어나는 나를 보고 상황이 장난이 아님임을 알았던 거 같다. 친구들이 날 일으켜줬지만 곧바로 주저 앉았다. 발목의 통증이 심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계단 쪽으로 갔는데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비명을 지를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 돌이 된 듯한 다리를 들고 보건실에 갔더니 대충 붕대만 감아주고 병원에 가라고 했다. 당시에도 능력 없다고 들었던 선생님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어이가 없다. 그 상태로 교무실도 가고 짐도 챙겨서 학교 밑에 정형외과를 갔다. 바가지를 씌운다고 유명했던 병원이었다. X-Ray 를 찍더니 뼈는 멀쩡한데 MRI를 찍어야겠다고 했다. 가격은 약 60만원인가. 어쨌든 듣자마자 억장이 무너졌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MRI 비용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더니 우리 동네에 천주교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픈 발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병원으로 갔다. 너무 서러운 상태였다. 돈이 없어 검사를 못 받는다는 생각과 발이 너무 아픈데 차도 없이 병원까지 갔어야 했던 그 때. 물론 엄마도 억장이 무너지셨겠지만 난 세상이 미웠었다. 그렇게 천주교 병원에 가서 또 검사를 받으니 '이런 건 여기 오시면 안되고 큰 병원 가셔야 해요' 라며 의사선생님이 한숨을 쉬셨다. 
 
 그 뒤로도 한참 세상을 원망했다. 나는 몇개의 병원을 전전했고 담임 선생님도 CT를 MRI대신 찍어라고 언지를 주셨지만 동네마트 이모가 추천한 병원에서 마저 MRI를 찍어야한다고 들은 나는 결국 50만원 가량의 거금을 내고 부모님의 한숨을 들으며 검사를 받았다. 물론 50만원이 큰 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고등학생인 나와 한달 벌어 한달 겨우 살아가는 우리 집의 가난은 나를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다른 병원에서 찍은 MRI 결과는 '발목 인대 파열'이었다.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고 인대가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빨리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시험기간이 코 앞이라며 2주 가량 기다려서 추석을 앞두고 수술을 했다. 돌아보니 굳이 그렇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괜히 열정이 넘치던 아이였던거 같다. 그 기간 동안 반 깁스를 하고 다녔다. 이 때도 최악의 실수는 오른쪽 발목을 다쳤으니 왼쪽 발목으로 걸어다녔다는 것이다 .무게도 꽤 나갔고 주변에서 가장 큰 학교였지만 엘리베이터 하나 없던 학교 덕에 발목은 크게 상했고 지금은 다쳤던 오른 발보다 더 자주 다친다.
 
병원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통깁스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셨으면서 하반신 마취를 하고 3시간 가량이 걸렸다. 수술 내내 너무 추웠는데 소심했던 난 말도 하지 못해 벌벌 떨었다. 그렇게 내 멘탈은 와장창 깨졌다. 체육 시간이 되면 빈 교실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체육선생님은 나에게 운동장에 나와 있어야한다고 했지만 발이 다친 사람이 10분 넘게 5층 계단을 지나 돌계단도 지나 운동장에 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또 나의 큰 실수는 재활 치료를 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내 발목은 살짝 안으로 말려있어 발목을 접지르기 쉬운 구조가 되었다. 1년 간 뛰지를 못했고 지금도 슬리퍼를 보면 살짝 무섭다. 4년 간 슬리퍼를 신지 않고 운동화만 고집했다. 물론 지금도 발목이 불편한 신발은 신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잦은 발목스트레칭을 통해 유도도 하고 성격도 당시보다 많이 밝아졌다. 돌이켜보면 돈에 목을 맸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 때늬 경험 때문이지 않나 싶다.
 
나를 돌이켜보며 내 인생의 한 토막 이야기를 끝마친다. 
 
-17살 때의 나를 기록하는 23살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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