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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은행에서의 1년을 돌아보며

by 맑은청이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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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1일, 입행한지 1년이 되었다. 

디지털로 입행했으나 영업점 근무가 필수인 은행에서 사주에도 없을 듯한 서비스직과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은행원이 된지도 1년이 지난 것이다.  나에게는 꽤나 감격스러운 일인데 1년동안 정말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영업점에 들어가자마자 스캔하는 듯한 수십 개의 눈동자와 MZ세대 신인의 기를 확실히 눌려 놓겠다는 게 보이는 상사들은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떨어진 나를 더욱 힘들게 했었다. 그래도 대학교를 다니면서 컴퓨터를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또 나름 열심히 대외활동도 했다고 여겼는데 이런 곳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지내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왜 1년을 버텼냐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할 거 같다. 

 

'은행에서 IT를 안 해봤기 때문'.

 

IT를 경험하면 일이 안 맞구나 싶어서 이직 하는건데 지금 이직 하는 건 그냥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을 못 이기는 거니깐 그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다는 독기가 있었다. (이직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대인관계'라고 들었다. 사람은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니깐 사람 때문에 이직 하는 게 결코 나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티도 많이 내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절대 울 수 없으니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울었었다. 조금 더 다정할 순 없었나 원망했던 상사들 탓도 있었지만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의 무력함도 너무 싫었다. 하지만 영업점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태도를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결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버텨낼 뿐이었으니깐.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라고 할 수 있는데 열정이 안 생겼다. 뭐... 자업자득일 수도 있겠다. 동기들을 나를 걱정했고 나 또한 나를 걱정했다. 일요일이 되면 다음 날 출근이 너무 무섭고 싫어서 깊은 우울감을 경험했다. 왜 나는 어딜 가든 제대로 섞이지 못하지라는 고민도 겪으면서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근데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난만 준다고 하였던가. 폭언과 쏘아보는 눈빛, 성희롱 섞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을 다 견뎌내고 6개월 후 놀랍게도 상황이 나아졌다. 나의 역할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괴롭힘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나도 나름 위축되었던 어깨를 필 수 있었다. 사람들과 장난 섞인 말을 하기도 하고 많이 나아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기업은행에서의 1년은 6개월 간 지옥을, 6개월 동안은 지상으로 이동을 경험하게 해줬다. 물론 극적이진 않았지만 이제는 월요일이 될 때 깊은 우울감을 겪지는 않는다. 그저 집에 가고 싶기는 하지만 그건 모든 직장인의 애환이니깐. 이직을 하고 싶을 때마다 내가 왜 기업은행을 선택했는지를 다시 떠올렸다. 일을 자주 관두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워라밸도 챙기고 싶었고 월급은 그래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직업관에 기업은행은 상당 수 일치했다. 물론 이렇게 40년이 지나가나? 싶을 때는 덜컹 두려움과 막연한 지루함이 느껴지면서 얼른 관두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본 적도 없는데 관둘 수 없었다. 그니깐 나의 1년은 무수한 고뇌와 고난을 적절히 섞은 나날들이었다. 고생 많았다. 내 자신.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 남은 1년 적당히 잘 즐겼으면 좋겠다. 1년 회고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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